가장 보통의 하루2017. 3. 9. 14:07

쌀알 멤버인 J가 하도 박지윤 들으라고 며칠동안 난리여서 들어보았다. 처음 들은 곡은 '겨울이 온다'라는 곡. 상상했던 박지윤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훨씬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9집 음반을 정주행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 사랑할 준비를 해'라는 곡을 듣게 되었다.  9집에서 2곡을 제외한 전곡을 박지윤이 만들었는데, 그 2곡 중 한곡이 '다른 사람 사랑할 준비를 해' 라는 곡이다. 괜히 미안하네. 곽진언이 만든 곡인데, 이 곡에 완전 꽂혀서 이 곡만 듣고 있다.

 

다른 사람 사랑할 준비. 새로운 사랑을 하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할..까. 사랑이 끝난 기억이.. 없다. 그 시절 내가 했던 건 지나고보니 외로움이었다. 내가 붙잡았던 건, 당시엔 간절하게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건, 자기연민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나를 껴안고, 울고, 내 한계를 마주하고, 절망을 붙잡고, 외로움을 붙잡고, 나 자신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미워했다 그런 날 용서하고 그런 날 안쓰러워하고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나 이외의 타인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십대후반과 이십대 초반 내내 그런 과정이었다. 누구나 필연적으로 부모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엘리노어 릭비: 그 여자편에 나오는 중년의 여교수는 그런 말을 했다. 아이를 왜 낳나 몰라. 고통스럽게 낳아서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 힘들게 키워 놓으면 한 20년뒤에 그러겠지. 엄마 때문에 이런저런 상처를 받았고, 그게 트라우마고 어쩌고 저쩌고. 맞는 말이지. 최근 최현숙씨의 인터뷰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상처와 트라우마에 대해서 그걸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법 밖에 없겠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쓰럽지 않은 삶이 있을까. 자신을 때리고 욕을 퍼붓던 아버지도, 어쩌면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는 그런 부모 외엔 다른 어른을 만난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자신의 부모는 자세히 들여다 볼 용기가 잘 생기지 않는다. 어렵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의 근원일 것이고, 그걸 마주해야만 용서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묻기가 겁이 난다. 먼저 시작하기에는 아직도 난 그릇이 너무 작나보다. 아직도 그냥 나만 들여다보고 싶은가보다. 우리 엄마도 쉽지 않은데, 너의 부모님은 오죽 할까. 그래서 내가 뭘 어찌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내가 받은 상처는 고스란히 내 몫이니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이게 좀 아물어야 뭘 좀 해 볼 수 있을까. 아직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가보다. 준비가 되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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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inter_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