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특별한 순간2016. 11. 29. 15:00

 

여행 셋째 날, 아침. 날씨가 너무 좋아 조식 먹고 해변에 나와 스노클링을 했다.

물론 나는 들어가기 귀찮아서 일광욕하며 책 읽으려고 했지만 너무 눈부셔서 책은 읽지 못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바닷속엔 별로 볼 게 없었다고 한다.

스노클링은 토카시키섬에서 하루 종일 할 거라서 욕심부리지 않았는데 잘 한 것 같다.

 

 

 

 

뭐, 하늘이 이렇게 푸르고 이쁘니까

책만 읽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오늘은 어디 갈까 책자를 들여다보다가 인근에 있는 동물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오키나와에서는 내내 그런 식으로 돌아다녔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앞으로는 계획 따위 세우지 않으리라 다짐할 정도였다. 우린 둘 다 성향이 P여서 (MBTI 성격유형 가운데 행동양식의 차이를 나타내는 Judging or Perceiving 가운데 인식형을 나타냄. 결정을 함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판단형과 달리 자율적으로 상황에 맞게 결정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 성향의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을 갈 때 별다른 계획 없이 떠나는 경우가 많다.) 계획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그때그때 감정과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게 얼마나 우리에게 잘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가 간 동물원은 나고에 있는 네오파크 나고 자연동식물 공원이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책자를 얼마나 뒤적거렸는지... 역시 메모를 해놨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해봤자 늦었지만..

 

지도를 펼쳐놓고 대충 가깝고 구미가 당기는 곳을 찜한 다음 움직이는 식이었기 때문에 사실 어디 어디 다녀왔는지 물어보면 정확한 지명을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기억력이 나쁜 탓도 있겠지만..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지도에 동그라미 정도를 쳐 놨기 때문인데 그거라도 해놔서 얼마나 다행인지.

 

 

 

 

우선 기관차를 타고 공원을 한 바퀴 돈 다음 내려서 구경했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할 만큼 볼 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기관차에서 동물들을 소개해 주지만 일어로만 소개해주기 때문에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우린 너무 신이 났다. 

입구에서부터 미친 듯이 따라오는 새들, 떡하니 길을 막고 서 있다가 우리가 지나가니 슬그머니 옆으로 비켜주는 공작새까지... 모든 상황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전혀 특별할 게 없는 일인데도 너무나도 특별한 감정으로 기억되는 것.

덥고 습한 날씨도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건 우리가 여행 중이기 때문이겠지.

 

 

 

지금까지 본 공작새 중 가장 큰 공작새.

 

동물원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가는 식당마다 closed라 겨우 찾은 식당에 들어가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주문했다. 찾아보니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뭘 먹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네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앞으로도 잘 기록할 자신은 없다. 넘나 귀찮은 것.

맥주가 맛있었고 우리가 생각한 새우튀김은 아니었지만 고소하고 먹을만했다는 것 정도는 기억나니까. 그걸로 만족.

 

 

페가 가고 싶어서 동네를 몇 바퀴나 돌았는데도 카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제대로 맵코드를 찍었는데 자꾸만 종착지가 시청 건물이어서 결국 책을 꺼내 근처에 있다는 '농원 찻집 사계의 색'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멀고 산속 깊이 있었다. 어김없이 시사가 우릴 반겨주었고-

 

 

 

 

 

누런 고양이는 우릴 신경도 쓰지 않고 그루밍만 하는 아주 한적한 오후의 카페였다.

산속에 있으니 다시 바다가 그리워져서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해중 도로 쪽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7박 8일 동안 있으면서 질리도록 바다를 봤는데 지금도 오키나와 하면 떠오르는 바다색이 있다. 최근 읽은 요시다 슈이치의 [분노]에서 오키나와가 나왔고 소설 속 인물들이 "이런 빛깔 바다는 본 적이 없어. 이런 빛깔 하늘도 처음이야." 하고 감탄하는데 그 순간 떠오르는 그 푸른빛. 그건 확실히 우리가 사는 도시의 일상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빛깔이다. 

숨이 턱하고 트이는 미치도록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고 있으면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 이 비현실적인 풍경이 일상이 되어 전혀 특별하지 않게 되면 그건 또 얼마나 슬플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오키나와의 바다와 하늘은 특별하다.

 

 

아라시야마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우린 이걸로 부족해서 코우리 오션타워에 가기로 했다. 


 

코우리섬과 야가지섬을 잇는 코우리 대교.

오키나와에서 가장 긴 다리로 2Km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는 길이 진짜 아름답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석양이 지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호텔 근처 마을에서 유명하다는 '오바아노이에'라는 식당에 가기로 하였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 별이 많았다. 그 순간의 행복이 아직도 오롯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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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inter_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