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위한 기도2017. 1. 16. 16:42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나는 쓴다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고 바람 속을 지나가는 사람처럼

텅 빈 중심을 향하여 나는 걸어왔다

어쩌면 모든 것은 기술의 문제

 

죽은 사람의 초대를 받는 잔칫집에서는

소화제나 화투장 같은 것을 준비해두는 법이지만

식욕과 투기심이 생의 은유가 되기 위해서는

사육의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악해지기 위해서는 소명 받아야 한다는 것을,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배운다

원한도 분노도 없는 살인에는 무엇이 빠져 있는가

어째서 현장검증에는 살인의 기술만 있고 즐거움은 없는가

두 번째를 위한 힘을 아껴두는 것을 주도면밀하다고 하는가

 

사고와 무친에 대해 생각하는 자가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망연함으로 밥을 넘길 때

사육의 기술은 최대의 힘을 갖는다

미래를 살아내느라고 내 청춘은 소진되었다고 나는 쓴다

 

 

<살인의 기술, 이현승>

'말을 위한 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종기. 우화의 강.  (1) 2017.01.16
신용목. 그것을 후회하기 위하여.  (0) 2017.01.16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  (0) 2017.01.11
Posted by winter_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