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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11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
말을 위한 기도2017. 1. 11. 17:12

 

 

 

  나는 나를 기꺼이 맞아주는 곳이면 어디에서는 피아노 연습을 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실이든 그네신 음악원이든 친구네 집이든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를 자주 맞아준 친구들 중에 안나 이바노브나 트로야노프스카야라는 화가가 있었다.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느 때라도 그녀의 집에 들이닥칠 수 있었다. 그녀는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뒷날 나에게 파스텔화를 그리도록 권한 것도 바로 그녀다. 그녀의 집에서 내가 연습할 때 쓰던 피아노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니콜라이 메트네르의 것이었다. 그녀와 그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러시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백 루블이 없는 사람에게는 백 명의 친구가 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전쟁이 한창일 때조차도 어디를 가든 내가 먹을 감자 하나는 구할 수 있었다. 거처가 없다는 것도 나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사람 저 사람 집을 오가며 잘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아나톨리 베데르니코프의 집에서도 잤고, 블로디야 차이코프스키나 수학자 이고르 샤파레비치의 집에서도 잤다. 어디를 가든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누구보다 많이 나를 재워준 사람은 네이가우스다. 그는 인심이 아주 후한 사람이었다. 새벽 4시에 쳐들어오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의 부인 역시 놀라운 인물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우리를 환대하 주었다. 밤잠이 없는지, 우리가 한밤중에 가 보면 차나 포도주를 마시고 있기가 십상이었다. 그녀는 심야에 불청객이 찾아들었는데도 오히려 반색을 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잘 데가 없나 보죠? 그럼 여기서 자요."

  그들은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네이가우스의 집에서 신세를 질 때, 나는 피아노 밑에서 잤다.

 

 - p. 94, 95

 

  나는 전곡 연주에 미친 듯이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쇼팽의 연습곡들을 모두 연주하지는 않는다. 옥타브 연습곡과 같은 몇몇 곡들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베토벤의 모든 소나타를 연주하지도 않는다. 전체 32곡 중에서 22곡만 연주할 뿐이다. 단 하나의 예외가 [평균율 클라비어]이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의 전곡 연주는 모든 피아니스트에게 하나의 의무가 되어야 할 듯하다. 나는 애써 그 일을 해 냈다. 무언가에 도전하는 심정으로, 나 자신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말이다.

 

- p. 113

 

   내가 미국에서 그토록 연주를 잘하지 못했던 것은 내 피아노를 선택할 권리가 나 자신에게 주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나에게 피아노를 수십 대나 보여주었다. 그토록 많은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다 보니 좋은 피아노를 고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줄곧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에게 자신이 연주할 악기를 선택하는 것보다 더 해로운 일은 없다. 피아니스트는 그저 홀에 있는 피아노로 연주를 해야 한다. 그것이 운명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심리적으로 모든 게 한결 편해진다.

  언젠가 이굼노프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은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는군요."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대꾸했다.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음악을 더 좋아하니까요." 나는 피아노를 고르지도 않고 연주회 전에 시험삼아 쳐보지도 않는다. 그런 일은 아무 쓸모가 없고 심리적으로 나쁜 영향만 끼칠 뿐이다. 나는 그것을 조율사에게 맡긴다. 내 기분이 좋을 때는 어떤 악기에도 적응이 된다. 반면 내 마음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을 때는 그럴 수가 없다. 물 위로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을 성 베드로보다 더 확고하게 가져야 한다. 의심을 품으면 베드로처럼 즉시 물에 빠지고 만다. 그렇기는 해도 야마하 사에서 나에게 제공한 피아노들에 관해서는 칭찬의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피아노들에서 내가 찾던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소리에 개성을 부여할 가능성과 진정한 피아니시모, 즉 극단의 피아니시모를 만들어내는 능력 말이다. 피아노로 낼 수 있는 효과 중에 아마 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으리라.

 

- p. 193, 194

 

  요컨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떤 나라에 도착하면 나는 지도를 펼쳐 놓고 나에게 무언가를 연상시키거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들을 흥행사들에게 가리킨다. 가능하다면 내가 아직 가 볼 기회를 갖지 못한 장소들을 말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떠난다. 피아노를 실은 차가 우리 뒤를 따른다. 우리는 마치 역병을 피하기라도 하듯 고속도로를 피해서 이동한다. 그러면서 나는 로안이나 몽뤼송이나 프로방스 지방의 한 귀퉁이에서 연주를 한다. 연주회장은 극장이 될 수도 있고, 예배당이나 교정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연주회에는 적어도 한 가지 장점이 있다. 사람들이 거기에 오는 것은 속물 근성 때문이 아니라 음악을 듣기 위해서 라는 점이다.

 

- p. 196, 197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눈앞에 있으면 씌어진 대로 정확히 연주하게 마련이다. 연주자란 하나의 거울이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성으로 음악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곡가가 써놓은 <모든> 지시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것이 안 되니까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에 찬성할 수 없다.

 

- p.233

 

  나는 어떤 작품을 내가 이해한 대로 연주해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의심을 가져본 적은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을 다른 식이 아니라 이렇게 연주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았다. 처음부터 늘 그러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의 확신은 악보를 주의 깊게 보았던 데서 나온 것이다. 악보에 담긴 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데에는 오로지 악보를 잘 보는 것만이 필요하다.

 

- p. 245,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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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inter_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