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특별한 순간2016. 9. 20. 18:19

 

 

 비행기가 1시간 연착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에게 남은 8일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처음부터 오키나와를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마침 오키나와로 가는 항공권이 너무 저렴해서 '뭐, 오키나와도 상관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떠나게 되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었지만 그게 어디든 상관은 없었다. 그저 떠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공항에 도착해 렌터카를 찾으러 가는 길. 날씨가 너무 좋아 이제서야 가슴이 두근거린다. 렌터카 예약, 숙소 예약, 섬으로 들어가는 페리 티켓 예약 (하루는 섬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찾아보니 토카시키섬으로 들어가는 페리는 100% 예약제였다. 심지어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 상황. 다행히 일어가 능숙한 친구에게 부탁해 예약할 수 있었지만 그러려면 일정을 계획해야 했다. 계획 없이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할 수 없이 동선을 그려보다 보니 대강의 여행 일정이 나와버렸다. 뭔가 여행의 설렘이 조금 줄어드는 그런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에도 토카시키섬은 너무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오키나와 여행 책자 한 권.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여행하기로 했다. 

 

 

 

 

 

 

아메리칸 빌리지로 가는 길. 풍경이 예뻐서 우연히 차를 세운 곳이라 명칭은 기억이 안 난다.

 

 

 

 

 

 

 

 

 

 

  아메리칸 빌리지에 도착하여 처음 보이는 초밥집에 들어가 일본에서의 첫 끼를 먹었다. 여행 내내 이런 곳은 대개 다 맛있었다. 맛집이라고 검색해서 간 곳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근처를 구경하기로 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둘러보는데 죄다 쇼핑몰. 쇼핑에 별 취미가 없는 우리는 표지판을 보고 선셋 비치로 걸어갔다. 해지는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 근처 아이온몰에서 숙소에 가서 마실 맥주와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가지고 중부에 있는 숙소로 가늘 길. 겨우 8시인데 주변에 건물이 많지 않아서 숙소 가는 길이 굉장히 어두웠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

 

 겨우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6층으로 올라가 짐을 풀었다. 우리가 묵은 방은 623호. 이곳에서 3박을 지냈다.

짐을 풀고 사온 맥주를 마셨다. 음악을 틀고 스트레칭을 하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를 간단히 정리해둔다.

 

- 오늘 가장 좋았던 건 초밥이 맛있었어.

- 렌터카 업체에서도 느낀 거지만 한국 사람들이 일은 참 잘해.

- 아메리칸 빌리지는 생각보다 참 볼 게 없었어. 난 그냥 자연을 보고 싶어.

- 내일은 어디에 가지.

- 그건 내일 일어나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 캔 맥주인데도 맥주가 진짜 맛있다. 매일매일 마시자.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비행기가 1시간 연착되어 늦게 출발했다는 메모가 아니었으면 난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거다. 왜냐하면 그 메모를 보고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것 또한 자주 잊어버릴 정도. 그럼에도 일기를 쓰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쓰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와도 사진 정도만 저장해 두고 정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내가 다녀온 여행이 어땠느냐고 물어봐도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어디에 가고, 무얼 먹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떠올려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마카오에서 먹은 스테이크가 제일 맛있었다는 건 알지만, 그곳이 어디였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대부분 우연히 들른 곳들이 좋았으므로 다시 가도 그곳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엔 간단한 메모라도 하자고 다짐했다. 적어도 어디에 갔었는지는 기억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들춰보게 되었다. 내가 오키나와에 다녀왔었지. 5월 24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이나 오키나와에 있었지. 나의 여행은 어떠했었더라, 하고. 마지막 날까지 내가 기억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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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inter_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