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후회가 많은 사람이지만
아침마다 눈을 뜬다, 가장 분명한 당위는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을 후회하기 위하여
나무들은 침묵으로 자신을 견딘다,
눈부신 높이의 부르튼 침묵 속에서
아무도
운명에 의견을 제출한 적 없다 - 내가 사는 곳에는 네 이름을 대신하는 기둥들이
푸른 지붕을 올리고,
흔들리는 창문으로 흔들리다 물든 창문으로 물들다가 떨어지는 창문으로
떨어지는 잎들이
깨지는 창문으로
어른거리는 땅 속에 녹슨 유적처럼 환하게 박혀들 때,
엘리베이터는 자주 중세를 지나간다, 지하 1층에서 발굴되는 것들 - 아름다운 창문을 닫고
툭, 꺼지는 조명처럼
나의 절망은 고대에 묻혀 있다
지하 2층
아무도 파보지 않는 깊이에
내가 사는 곳에는 새들의 지저귐이나 골목 어귀에서 나 대신 머리를 감싸 쥐고 쭈그려 앉은
젊은 남자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4층에 산다 30억 년쯤 뒤의 지층에
나무는 깨진 그림자를 땅 속에 박아놓았다 - 뿌옇게 번지는 빛의 뿌리를
나는 후회가 많은 사람이지만 날마다 멀리 고층 아파트 불빛을 바라본다
우리의 미래가 닿을 수 없는 시간을
<그것을 후회하기 위하여, 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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